[책] 어느 날 대표님이 우리도 브랜딩 좀 해보자고 말했다

[책] 어느 날 대표님이 우리도 브랜딩 좀 해보자고 말했다

책은 저마다의 의미를 가지고 온다.

인생의 깨달음을 주는 책이 있는가 하면, 어떤 책은 내가 겪고 있던 문제를 마법처럼 해결해주었기에 의미 있기도 하다. 뽐낼만한 거리가 많아 소개할만한 책이 되기도 하며, 독서의 시간이 즐거웠기 때문에 그만인 책도 있다.

또 어떤 책은 한 문장으로 충분하기도 하다. 이 책이 그랬다.

애당초 ‘브랜딩을 하자’라는 말은 좋은 표현이 아닙니다.

2020년 9월.

나는 정확히 ‘브랜딩을 하자’라는 말을 꺼냈다.

왜 그랬냐고? 여러가지 이유가 정말 많았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면 브랜딩을 ‘마법의 열쇠’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영업 현장에서 설득이 되지 않는 것은 역시나 제안서 PPT에 브랜딩이 묻어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광고를 하는데도 시장의 반응이 폭발적이지 않은 것은 광고 콘텐츠 브랜딩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회사의 지원자가 부족한 것은 채용 페이지의 브랜딩이 미흡했기 때문이었다.

세련된 스타트업 분위기가 나지 않는 건 아무래도 브랜드 굿즈와 미니멀한 웰컴키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도 없이 많은 문제들을 ‘브랜딩’만 하면 해결할 수 있었다.

이쯤되면 ‘브랜딩을 하자’는 나의 말은 분명 좋은 표현을 넘어, 훗날 우리 회사를 업계의 애플쯤으로 만든 역사적인 선언 정도가 되었어야 했다.

대표님으로부터 저런 지시가 내려오는 것은 진짜 브랜딩을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불안에 기인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매출이 왜 멈춰 있는지, 소비자가 왜 자꾸 빠져나가는지, 경쟁사가 잘되는 이유는 뭔지 그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해 이것저것 해보려는 시도 중 하나로 브랜딩을 택한 것이죠.

대표님의 입장에서 브랜딩은 회사 전체를 성장시켜줄 마법의 열쇠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기대나 목표와는 달리 성과가 빨리 나오지 않습니다. 불안해진 대표님은 다른 회사의 레퍼런스들을 자꾸만 찾아봅니다. 그중 유난히 재미있는 브랜딩 프로젝트들이 눈에 쏙쏙 들어오고요. ‘우리’를 규정하려 해도 이미 머릿속에 들어온 레퍼런스들이 잘 잊히지 않습니다. 이런 가운데 실무자는 ‘카드 뉴스 만들기’처럼 업무가 구체적이지 않으니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 그러다 담당자가 바뀌고 다른 일들이 추가되면서 브랜딩은 미뤄지다가 결국 흐지부지됩니다.

블루보틀을 꿈꾸며 시작한 브랜딩은 이 책에서 나오는 잘못된 사례를 그대로 따라갔다.

우선 마케터(나)와 디자이너가 팀을 이뤘다. 그럴싸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뭔가 자꾸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고 조바심이 생겼다.

급하고 저렴하게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실무자 배정도 급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은 일을 잘하는 마케터나 디자이너와 소통하게 되죠.

시간은 흘러가고 뭐라도 아웃풋을 내놓아야 했다. 로고와 심볼을 정하고 메인컬러, 서브컬러, 폰트 등이 담긴 스타일 가이드를 만들어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웹사이트, 스티커, 박스패키지 등 어플리케이션을 제작했다.

브랜딩 프로젝트에서는 심적 부담이 적고 당장 눈에 보이는 일부터 처리하려는 방식으로 지연 행동이 나타나죠. 보통 굿즈를 만든다거나, 로고를 고친다거나, 홈페이지를 리뉴얼하는 등의 작업을 먼저 하게 됩니다. 또는 행사나 이벤트, 유튜브 콘텐츠 제작 등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일을 우선시합니다.

조바심으로 시작한 일의 결과물들은 조악했고, 우리의 정체성이 담겨있기는 커녕 그게 뭔지 갈피도 잡지 못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용기는 없었고 일상적인 업무들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제 브랜딩이 ‘만능열쇠’가 아님을 안다. 나이키, 애플, 블루보틀의 사례를 보며 ‘나도 멋있는 브랜드를 가지고 싶어’하며 가볍게 뛰어들 일도 아님을 안다. 하지만 언젠가는 해야만 하는 일인 것도 안다.

훗날 다시 도전할 브랜딩에 대해 몇 개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 로고를 만들고 광고 콘텐츠 가이드를 만드는 것은 분명 가시적인 성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브랜드와 팀의 정체성과 지향점에 대한 합의와 이해다.

브랜딩을 업무 단위에서 생각해보면 크게 ‘내부 정리’와 ‘행위 산출’이라는 2개의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습니다.

  • 브랜딩을 불안감이나 막연한 기대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정확히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먼저 생각해야한다. 브랜딩은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 마법처럼 뭔가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있는 일을 개선하고 업그레이드하는 일이다.

매출이나 채용 등 회사 내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문제들과 내가 느끼는 불안함의 원인을 몰라서 브랜딩을 그저 만능열쇠처럼 사용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되물어봅시다. 브랜딩 프로젝트를 시작하려면 우선 이 부분에서 솔직해져야 합니다. 정확히 어떤 부분을 개선하고 싶은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브랜딩은 많은 권한과 책임이 필요하다. 그만큼 많은 리소스가 주어져야하고 디자이너나 마케터 개인에게 맡기는 일이 아니다.

브랜드팀(또는 매니저)은 대표 다음으로 가장 많은 권한과 책임을 지니는 팀입니다.

  • 브랜딩 과정에서는 팀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일단 모여서 자유롭게 이야기해보자는 방식은 지양하자. 의견이 편향되지 않으면서 자유로운 생각이 공유될 수 있도록 과정을 정말 잘 설계해야 한다.

데이터를 먼저 언급하면 데이터에서 드러난 결론이 프레임이 되어 생각을 가둘 위험이 있습니다. 일단 의견부터 듣고 데이터와 대조해보는 쪽을 추천합니다.

브랜딩 회의에서는 좋은 질문과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중요합니다. 구성원들의 사고가 자유롭게 확장되었다가 다시 하나로 좁혀질 수 있는 흐름을 만드는 것은 물론, 질문 문항의 순서에 의해 응답자의 답변이 달라지는 응답 순서 효과(Response-order Effect)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본 포스팅은 청년마케터와 미래의 창 출판사가 함께하는 ‘청년마케터 : 마케팅과 브랜딩, 그리고 독서모임’의 12월 선정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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