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

1.

날씨가 정말 좋았던 날, 사운즈 한남 스틸북스에 들어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 에세이 『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가 홍보되고 있었다. 책을 집어들어 훑어보다가 바로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 구매 이벤트로 MURAKAMI T가 새겨진 옷걸이를 받았다. 당시에는 증정품으로 웬 옷걸이일까 생각했는데, 지금 글을 쓰면서야 비로소 ‘T셔츠 관한 책이라 옷걸이를 선택했구나’하고 깨닫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에서는 (꽤 오래 전이지만) 노르웨이의 숲, 해변의 카프카, 1Q84 총 세 권을 읽었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침 요근래 에세이에 관심이 많아지기도 했고, 소설이 아닌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은 어떨까 궁금한 마음에 덥석 한 권을 사와서 펼쳐 읽기 시작했다.




2.

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옷장에 자연스럽게 모인 티셔츠들에 대해 쓴 에세이다.

딱히 물건을 모으는 데 흥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느새 이런저런 물건이 ‘모이는’ 것이 내 인생의 모티프 같다. 다 듣지 못할 양의 LP 레코드, 아마도 다시 읽을 일 없을 책, 잡지 스크랩, 연필깎이에 끼우지도 못할 만큼 짧아진 연필, 별의별 것이 내 주위에 빼곡하게 늘어간다.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 p.005

옷장의 낡은 티셔츠들은 서핑, 레코드샵, 맥주, 책, 대학교, 슈퍼히어로 등 테마별로 묶여 하나씩 소개된다. 엄청난 내용이 담겨있거나 어렵게 쓰여지지도 않았다. 티셔츠에 담겨있는 비하인드 스토리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생각들을 가볍게 읽어나가면 어느새 책의 마지막 장을 덮게 된다.




3.

요새 ‘취향’이라는 키워드가 나에게 크게 자리잡고 있는데, 무라카미 하루키는 확고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취향이 확실했기에 호와 불호를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그렇지만 전혀 무례하지 않았다.

그렇게 단단한 취향을 가지고 보낸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모인’ 물건들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최근에는 비우는 것만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모인 물건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지는 것을 보면서, 내가 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가 버린 물건들은 채 풀어지지 못한 이야기를 담고 사라져버렸지.




4.

무엇보다 글이 재미있었다. 정말 가볍고 편하게 썼다는 생각이 들었고, 읽는 내내 가진 콘텐츠가 아주 풍부한 사람과 시간 가는줄 모르고 즐겁고 유쾌한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 동안 많이 해왔던 이야기들에 대한 반복이나 변주 정도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같다. 그렇지만 처음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접하는 나는 이 책을 계기로 다른 에세이들도 많이 찾아보게 될 것 같다. 글을 읽는 내내 작가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싱어게인에서 유희열님이 “결국에 그 가수를 왜 좋아하나? 사람이 매력 있어서예요”라는 말을 했다. 너무 공감했었는데, 책을 읽는 내내 왜 이 작가의 팬이 많은 건지 알 것 같았다.




5.

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

자연스럽게 옷장에 모인 낡은 티셔츠에서도 숨길 수 없는 단단한 취향을 가진 사람. 그런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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